2014년 12월 29일 월요일

12. 29.

랩탑 등 포터블 기기의 발전으로 인해
작업환경은 엄청나게 편리해지고 진입장벽도 낮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일과 쉼의 경계가 사라진다 ㅋㅋㅋ쉬어야하나 일해야하나...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12. 16.

(부끄럽지만 다른 표현을 찾지 못하겠기에)'예술가'로서, 나는 내 모든 행동과 생각-아무생각 하지 않음과 누워 배를 긁는것 마저도-이 그대로 가치있는거란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요즘 그걸 좀 잊은 것 같다. 역시 몸이 피곤하면 생각이 깊어지기가 쉽지 않다. 김창환 아저씨의 인터뷰를 보다 새삼 다시 떠올렸다. 내 털끝 하나, 숨결 하나까지 모두 다 나의 음악 혹은 다른 어떤 예술이 될 것이다. 살아 숨쉬는것 자체가 내게 밑천이요, 재산이다. 나의 가치를 잊지말자.

연예인이나 다른 누구를 칭할때 그냥 누구누구, 혹은 누구누구씨 하게 되는데 김창환 아저씨만은 왠지 아저씨다.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Kpop Star Season4/ 홍찬미/ 유희열

 우리는 뭔가를 평가하기에 앞서, 설정된 기준들에 대입해 보곤 하는 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기승전결이 확실한가, 발성이 좋은가 어떤가 하는 식으로. 그러나 그것은 평가의 근거가 되어야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좋지 않은데, 왜 좋지 않은가 보니 기승전결이 좀 부족한 것 같다 하는 식이어야지, 발성이 닫혀있으니 이건 좋지 않은 노래라는 식이면 안 된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별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그리고 그들의 혹평이 꼭 그런 사고방식에서 비롯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내겐 나름의 경각심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안 좋은 이유를 찾기 전에 좋은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자세를 다듬어야겠다.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악의 없는 말이었을텐데, 쫌생이마냥 자꾸 생각이 난다.
이럴땐 대나무숲에 소리질러야지.
듣기 좋은 노래는 니들 많이 불러라. 내는 내맘대로 할란다.

2014년 11월 14일 금요일

첫눈

 첫눈을 맞았다. 손이 시렵다.

 신문을 돌리며 생각했다.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이라고. 하지만 오지 않겠지, 하고.

 집에 오다 신호등에 걸렸는데, 내일은 휴일이라는 마음 때문인지 그대로 집에 오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짧게나마 드라이브라도 하자, 하는 마음으로 차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어느 지하도로 들어서며 이길로 가면 너무 멀리 가는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진입했다. 그러고 나서야 아차, 나는 드라이브를 하는 중이었지, 하고 생각했다.

 그대로 옆으로 빠지는 길이 나올 때 까지 달리는데, 헤드라이트에 뭔가 알알이 떨어지는 것이 비친다. 눈이다. 결국 눈이 오는구나 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지난해 눈길운전을 처음 하면서, 미끄러져 (뽑은지 한 달 밖에 안 되었다던)앞차 뒤꽁무니에 추돌했던 이후로 난생 처음 눈이 무서워졌지만 아직 올 겨울엔 미끄러지지 않았으니까. 아마 눈길운전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 나면 다시 눈이 싫어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머잖아 옆길로 빠지기도 전에 눈발은 사라졌다. 잠시 오고 말았거나, 눈이 오는 좁은 지역을 내가 벗어난 것이겠지. 아쉬웠지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처음 신호에 걸려 우회전을 해서 나갔는데, 길의 왼쪽에서 다시 들어와 조금 놀라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차를 대고 나니 다시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엔 산책을 하기로 하고, 커피라도 한잔 하며 걷기 위해 편의점으로 향했다. 신문을 돌리고 돌아오면 거의 항상 있는 미술전공의 키큰 남자 알바생이 오늘도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사려고 했지만 조지아나 레쓰비같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커피 뿐이었다. 별 수 없이 찬 커피를 사고, 호빵이 눈에 띄어 호빵도 샀다. 올 겨울 첫 호빵이다. 지금은 침대에 엎드려 올겨울 첫 호빵을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장갑을 챙겨 가지 않은 탓에 손이 시렵다. 한 손에는 찬 커피를,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있자니 양손 모두 무방비상태라 올들어 가장 손이 시려웠다. 큰 길에 다 가기도 전에, 얼굴에 찬 알갱이가 떨어진다. 다시 눈이다. 이번엔 꽤 많이 온다. 늘 걷던 길 반대쪽으로 걸어보려 했지만 그냥 그대로 동사무소 앞 벤치에 가서 앉았다. 바로 앞에 가로등이 있어 눈 구경을 잘 할 수 있다. 눈은 마구잡이로 쏟아질 때 운전중인 차 안에서 보는게 가장 공포스럽고, 언제든 가로등 아래서 올려다볼 때 가장 예쁘다. 차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눈을 보는것도 좋다. 내가 운전하고 있지만 않다면.

 첫눈이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며칠 전 어느 여자애가 이미 첫눈을 선포했던 것이 생각났다. 사실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이라고 생각할때부터 이미 그 여자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기 직전 밖에 나갔을 때에도 나는 눈 냄새도 맡지 못했건만, 그 애는 퍽 신난 표정으로 밖에 눈 와요, 첫눈이에요, 그랬다. 덩달아 기분이 좋았지만 너무 티를 낼 수도, 또 너무 숨길 수도 없었다. 삼십여분 뒤 내가 나갔을 때에도 눈이 오고 있길 바랐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몇몇에게 물었으나 눈을 목격한 이는 없었으니, 정말 잠시 흩날리고 말았을 뿐이리라.

 첫눈이란 단어는 참 명료하지만, 실상 기준은 꽤나 모호하다. 그 겨울에 처음으로 직접 맞거나 본 눈일지, 혹은 내가 보지 못했어도 누군가의 증언에 따라 나는 맞지 못한 첫눈이 지나가던지. 기준이 엄격한 사람은 만족하지 못할만큼 흩날리는 눈은 첫눈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나의 올해 첫눈은 어느 눈으로 할까. 어차피 내가 의미를 담은 첫눈이 나의 첫눈이 아니겠는가. 나는 기꺼이 그 애의 첫눈을 나의 첫눈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눈을 맞고 들어왔다. 손은 아직 시렵다.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11. 8.

신문배달이 내게 가장 적당한 시간대의 알바라 생각했던건 큰 오산이었다. 내 취침시간은 극도로 늦춰지고 있다. 잠은 오질 않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아.

2014년 11월 1일 토요일

11. 1.

(자주 하는 표현으로)모두에게 그렇지만, 특히 예술가, 그 중에서도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름에 인색해서도, 틀림에 관대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현실과 이상

 몇 주 전 밤, 산책을 나갔다가 목격한 일이다. 작은 골목길을 건너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그 길을 가로질러 가려는 차가 마주쳤다. 골목이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 보행자가 건너지 않고 기다릴 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무리중 한 남자가 슥 앞으로 나섰다. 차는 브레이크를 밟았고, 그의 일행들은 뒤에서 그를 붙잡았다. 어찌됐든 차는 먼저 지나갔고, 타박하는 일행들에게 남자가 말했다. “뭐 왜, 사람이 먼저라고 사람이.”

 이 일을 목격하고, 나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것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는 이상이란 [현실]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는 가치이며 [현실]이란 이상을 포기하고 안주하는 것이라고만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두 개념에 대한 깊은 사색도 없이, 위의 막연한 생각을 기반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이상과 안주해서는 안 될 현실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결정해 왔다. 하지만 예의 일화를 목격 한 순간, 나는 [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 너무 야박한 평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은 이상이다. 이건 이전의 생각과 같다. [하지만 교통의 원활한 흐름과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해서 차가 먼저다.] 이것이 이전에 생각한 현실이다. 그러나 새롭게 깨달은 현실은, [차가 먼저다]가 아닌 [둘이 부딛히면 사람이 손해다]라는 것이다. 이상을 포기 운운하는 것은 어찌됐든 선택을 했다는 얘긴데,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상을 지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생각을 더 발전시켜보려고 했지만, 언뜻 떠오르는 생각만 해도 너무 광범위하여 이 주제에 대해 여러번에 걸쳐서 새로 포스팅해야 할 것 같다.

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10. 16.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닌데, 요즘들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사회를 묘사하는-예를 들어 신사의 나라 영국 같은-말은 그 사회에 가장 결여되어 오히려 필요한 것을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또한 내가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나를 더욱 몰아세웠던 것도 같고, 열심히 살고 있음을 어필했던 것도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코너에 몰려 나 자신을 방어하는데 급급한 지경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먼저 내렸으면 해결되었을 일이다. 이유가 없는 노력은 별 보상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고있었다. 현재의 나는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 또한 왜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일까나. 의욕이 꺾였을 때에 스스로 그것을 되찾기는 힘든 일이다. 의욕을 되찾기 위해 그 자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열심히 살 이유가 나타날까.

 또 그런 생각도 든다. 애초에 진열대 위에 자리잡은 삶이라는 생각.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살아왔다는 생각.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는 생각. 나는 왜 음악을 하고 있는걸까. 음악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내렸는데, 그것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분명하게 내렸었다. 그것이 즐겁기 때문에.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제와 들기 시작하는 것은 이전의 답에 무효선언을 내린 것은 아닐까. 음악을 왜 하는지 묻지도 않았는데도 언제나 즐겁기 때문이라고, 이것이 즐겁지 않다면 그만둘거라고-그러지 않을까 싶다고 여지는 남겨두었지만-해왔던 나다. 갑자기 이게 다시, 아니 처음으로 궁금해진건 잠시 지쳐있을 뿐인걸까 아니면 정말 뭔가 문제가 생긴걸까.

 즐겁기 때문이라는 말이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진열대 위의 삶 얘기로 돌아가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대한 답으로 나는 음악인으로서의 삶을 택한 것이 아닌지. 이런 생각이 얼핏 들 때마다 나는, 나의 명예욕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아이돌밴드들을 떠올리며 ‘그래, 나는 저런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잖아’, 하고 생각했다. 그게 자위는 아니었는지? 그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 저런 삶은 내가 원하는 [인정받는]삶은 아니었으니까. 영혼없는, 껍데기뿐인, 진실되지 못한 인생이란 별 거창한게 아니라 이런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는게 생각이 났다. 4년도 더 된 일이다.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던 순간. 당시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것이다. 문제는 그 시점이다. 내 눈물샘은 김연아의 연기를 보는 동안이 아닌, 혹은 연기가 끝난 후가 아닌, 바로 점수가 발표되던 순간에 반응했다. 당시에는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왠지 지금은 확실히 그랬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때의 마음이 내 속물같은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지금의 기억이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 요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때도 내 확신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또 해보자. 지금의 나는 누군가 열렬히 사모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책이자 동시에 또 다른 문제이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단 한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라는 것 말고는 다를게 하나도 없다. 그 한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엄청 열심히 살긴 하겠지만, 그 방향이 좀 모호해진다. 생각해보니 분명해진다. 연애가 잘 되는 동안, 나는 모든 부분에 과부하를 걸고 굉장히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 연애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내가 무얼 해도 딱히 잘 보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추진력을 잃는 것이다. 낙하운동과 가속도운동이 물리적으로 동일하듯, 이런 식으로 열심히 살게 된다 한들 진정성 없는 삶이라는 본질은 같다.

 결론은 이미 옛날에 난 것 같은데, 그 결론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혹은 받아들여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 같다. 시험문제는 결론을 내리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데, 이 결론은 새로운 문제로 다가온다. 더 크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아 힘들다 자유로운 삶이. 책임져야 하는 삶이. 제도권교육 안에 있을때가 마음은 편했지. 휴


*사실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왜]를 생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 모든것에 대해 [왜]를 던져야 하는가.

**[왜]를 한글자로 묶어두니 굉장히 어색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 내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이런 뭔가 가치있어 보이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 그래서 아직은 블로그 주소를 오픈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하루 자고 나면 모든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메시에 목록

최초의 3분(스티븐 와인버그, 양문)읽는 중이다.
메시에 목록은, 혜성을 찾는데 방해되니 보지 말하야 할 것들에 대한 목록이란다.ㅋㅋㅋ

2014년 10월 8일 수요일

블록블록

휴대폰으로 긴 글을 작성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하고
집에서 데스크탑으로는 영화만 보기 때문에
맥북을 사면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맥북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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