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스스로 꼿꼿이 선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역시 꼿꼿한 멋진 사람과 나란히 설 수 있도록. 때로는 내게 기댈 수도 있도록. 그러나 나는 너를 구원자로 여겼나보다. 내 인생을 구원해 줄 단 한명의 메시아라고 여겼나보다.
구원자이자 절대자인 네가 어린양을 버리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모양이다. 네가 나를 신경쓰고있기를 바란다. 바라게 된다. 문득문득 제정신이 들 때면 그런 헛된 상상은 하지 않으려 하지만, 멍하니 있다보면 또다시 그런 것을 바라고 있다. 아니, 마치 이미 그런 것 처럼 상상하고 있다. 너는 대체 내게 무슨 의미인가. 이건 나의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집착인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사랑인가.
글로 적어보니 조금 명확해지는 것 같다. 이건 아무래도 병적인 집착에 가까운 것 같다. 이 집착을 버리는 것이, 내 사랑의 진실됨을 부정하는 것과 같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진실된 마음을 가졌지만,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선을 넘으면 집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나를(그리고 어쩌면 너 역시를) 괴롭히는 이 집착을 버린다고 해서 내 마음이 거짓이거나 부족했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런 걸 이제서야 처음 깨달은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나를 차분하게 하려 할 때면, 어김없이 망령이 되살아난다. 행복했던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그때로 되돌아가려는 추억의 망령.
함께 밤바다를 보고 돌아와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말해준 그녀가 생각난다. 성곽을 따라 난 길을 걷다 찾은 좋은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밤소리를 함께 듣던 그녀가 생각난다. J의 가족과 함께 갔던 드라이브, 햇빛이 눈부시게도 부서지던 그 저수지변에 함께 앉았던, 그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계속 생각난다. 미래의 암시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저 내 인생 한때 찬란히 빛나고 저물어버린 과거의 그림자가 되었다.
현재의 행복이 끝났다고 하여 과거의 행복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행복이 인생에 다시 없을 최고의 축제였다고 해도, 축제는 언제든 끝날 수 있다. 축제가 막을 내릴 때에, 함께 마무리하자. 기를 쓰고 더 놀려고 하면, 진상이 될 뿐이다. 폭죽이 터질 때 내 모든걸 후회없이 태워버리고, 날이 밝아오면 집에 가서 자자. 지금 길거리에서 잠들기 일보직전이다.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