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1일 토요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보려는 노력

 내까짓게 감히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싶다. 딴에는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노력할테지만, 내 글의 무게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사이 나를 짓누르는 이 생각들을 풀어놓지 않으면 안 될것 같아 펜을 든다.

 내게는 여동생이 한명 있다. 얼마전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동생과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한잔 마셨다. 컵을 싱크대에 내려 놓으려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동생에게 말했다. (자취를 하고 보니)물 한모금 먹자고 소비되는 컵이란 엄청난 거 였다고. 예전엔 몰랐었다고. 쌓이는 설거지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그러자 동생이 약간의 냉소와 함께 내게 한 말은, 왜 몰랐을까, 였다. 할 말이 없었다. 집에 사는 동안, 나는 컵을 쓸 줄이나 알았지 씻을 줄은 몰랐던거다. 망나니 였던거지 뭐, 하고 동생에게 말한 뒤 컵을 씻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또한 미안했다. 동생은 설거지를 했고 나는 안 했다. 엄마는 설거지를 했고 아빠는 안 했다. 그리고 하나의 행동은 그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자인 내 동생은 남자인 나보다 불리한 가정사를 겪었다. 동생이 말해주기 전까지 난 전혀 몰랐다. 내 스스로 얻어낸 것이 아닌 ‘우위’를 누리는 동안 스스로 그걸 알 수가 없었던 거다. 지금도 난 단지 어렴풋이 짐작이나 할 수 있을 뿐일게다. 실제로 겪지 않고선 절대로 온전히 알 수 없는 법이다. 나는 어쩌다보니 남자로 태어난 덕에, 여자로 태어난 동생이 겪고 느끼는 것을 절대로 정확히 공감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제3자, 아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가해자인 내 입장에서 헤아려보려 노력하는 것 이상은 도저히 할 수가 없는거다. 이게 내 글이 가진 무게의 한계이다. 부자가 쫄딱 망해보면 가난한 이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병사로 복무한 적 있는 장교는 그렇지 않은 장교들 보다는 병사의 심정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색인종이 당하는 차별을 백인이 공감할 수 있을까? 물론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고, 타인에게 완벽히 공감하는 일이야 당연히 불가능 할테지만 개인대 개인이 아닌 ‘남자’로서 ‘여자’가 느끼는 차별, 공포 등은 함부로 안다고 덤벼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줍잖은 노력이나마 해보고 싶다면 우선 그걸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또한 그걸 본인의 기준으로 해석하거나 재단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실제로 느끼는 것을 감히 다른 누가 평가할 수는 없다.

 돌고 돌았다. 나를 짓누르는 바로 그 생각은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수많은 여성들의 분노와 공포를 접한 뒤 정신이 아득해졌다. 범인 스스로가 ‘평소에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저질렀다고 진술한, 실제로 일어난 여성혐오범죄가 이렇게 왈가왈부할 대상이라는게 이상했다. 고작 하는 이야기가 남성을 일반화하지 말라는 비난이라니. 이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친 개별화의 오류다. 찾아보니 이런걸 ‘나태한 귀납’이라고 한단다. 나는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그런 얘길 하지 않았다. 이런걸 ‘허수아비 때리기' 라고 한다. 대신 그들은 ‘모든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순히 여자라서 살해당한 실제 사례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추론이다. 심지어 그런 사례가 있기만 한게 아니라, 많다. 많은 남자들은 왜 그들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남성을 변호해보자면, 도저히 그냥은 알 수 없는 성질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실체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허수아비를 때리거나 스스로 중립적이라 착각하며 방관자의 위치에 서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을 비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기는 잘못한게 없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최소한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의지가 없는 자에게까지 할 말은 없다. 공감의지가 떨어지는게 자랑은 아니다, 정도? 타인이 나로 인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면 가만히 있는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싸우고 싶지 않다면 우선 잘못된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깡패가 누굴 패고 있는데 팔짱끼고 서 있는건 하나도 중립적인것도 정의로운것도 아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의 아픔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이유없이 죽어야했던 한 생명에 대한 애도이다. 그 죽음에 같이 공포를 느낀 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그 공포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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