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6일 월요일

상식적인 것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어떤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여성 혐오’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의견을 표명하여 (내가 생각하기에 긍정적 의미의)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자세하게 알아본 것은 아니지만, 몇몇 드러난 논쟁들을 보며 내가 느낀 건,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그 대상의 한 부분으로 전체의 평가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극히도 고리타분하며 당연해보이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그들이 비난하는 대상의 평가와 그들 자신에 대한  평가 모두를 향해있다. 히틀러같은 희대의 극악한 범죄자도 어쩌면 동물권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또 어쩌면 신앙심 깊은 친절한 이웃이 지독한 동성애 혐오자일 수 있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진 자의 이웃들이 그는 평범하고 친절한 이웃이었다는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보통 이런 상황에 “그가 친절한 이웃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극악무도한 살인마였다”라고 평하게 되지만, 그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제 3자의, 조금 무책임한 시선에서 그는 친절한 이웃이며 또한 연쇄살인마이기도 했던 것이다. 두 의견은 일견 비슷해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혀 다른 의견이다. 전자는 그간 알고 있던 사실이 ‘진실’이 아님을 내포한 의견이다. 같은 대상의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사실을 접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살인마인줄 알았더니 사실 친절한 이웃이었다”와 같이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극단적인 예를 들기는 했지만, 요는 하나의 대상이 하나의 성질만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의 나쁜 짓을 용서해 줄 필요는 없으며, 반대로 나쁜 일을 하는 집단이 하는 좋은 일을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는거 아닐까?

 처음에 얘기했던 집단이 비난하는 한 만화가가 있다. 이유를 최근에 알았는데,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이유는 이렇다. 그 만화가는성형수술로 인해 비슷한 외모를 갖게 된 여성들을 ‘강남미인도’라는 것으로 희화화했고, 이는 아름다워지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무시하고 그 요구를 어떻게든 쫓아가고자 노력한 이들, 물론 사회적 강요를 당하는 약자들을 조롱하는 비열한 짓이라는 거다. 동의하는가? 혹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그린 만화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애꿎은 이를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나는 많은 경험을 쌓거나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기에,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상식’을 이용해왔다. 사실은 이렇고 배경은 어떻고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미로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옳은 일은 상식적이어야 하마 직관적으로도 옳은 일이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말 그럴까?

 상식: [명사]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분별 따위가 포함된다. (유의어: 교양, 보통지식, 상규) 상식적: [관형사, 명사]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 되는, 또는 그런 것

즉, 상식이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그러하다 일컬어지는 것’인 것이다. 몇년 전, 나는 이와 같이 ‘상식’을 통해 어떤 일을 판단하는데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상식이란 세상이 변하며 함께 달라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불과 백년 전만 해도 백인들이 가진 흑인에 대한 우월한 지위는 상식이었다. 남성만이 투표권을 갖는 것이 상식인 때가 있었고,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상식이 된지도 그리 오래지 않다. 신앙심이 믿음이 아니라 상식인 시절도 있었다. 모두가 당연히 여기던 상식을 깨부순 자들이 좀 더 옳은(혹은 옳다 여겨지는)사회를 만들었다. 또한 그것은 새로이 상식이 되어 세상이 옳게 굴러가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상식 덕분에 우리는 독재자의 지배를 받지 않거나, 받게 되더라도 저할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집단’이 만화가를 비난한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 정말 그들은 ‘그 만화가’를 비난한 것일까? 그들은 (최소한 내게는)효과적으로 기존의 잘못된 상식을 공격했다. 똑같은 얼굴을 한 소위 ‘강남미녀’를 그저 좀 한심한, 그러나 나와는 상관이 없는 타인으로 여기던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건지 비로소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공고해보이는 상식의 요새는 이런 균열로부터 붕괴에 이르게 된다.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사람을, 혹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을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은 모르는 새에 ‘상식’과 같은 일이 되어 있다. 의도했건 그러지 않았건 흔히 그러하니까. 이 상식은 이런 작은 균열들로 인해 결국에는 무너질 것이다. 강남미녀들의 ‘한심한 짓’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한심한 짓’을 할 필요가 없도록 이 ‘한심한 세상’을 바꿀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그 만화가의 모든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되며, 이런 혁명적 행동을 이유로 이 집단의 과를 모른체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물론 그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근거로 이 혁명을 부정해서도 안된다.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구나”는 그저 분쟁을 싫어한 한 노인의 방관적 입장이 결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옆 테이블에서 “전라도에 편견을 안 가지려고 하는데 깽깽이들은…”운운하는 저 작자는 정말로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는걸까? 그리고 그 남자를 한심해하고 있는 나는 그 한마디로 저 남자에 대한 평가를 결정한 것에 대해 진정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나는 진정 상식의 붕괴를 믿고 있는가? 그 붕괴를 견딜 용기는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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